2015 봉산문화회관기획 2015 특화 전시 지원 프로그램 META; 이름 없는 영역에서展

■ 전 시 명 : META; 이름 없는 영역에서展 ■ 기 간 : 2015년 1월 29일(목) ~ 2월 8일(토), 월요일 휴관 ■ 관람시간 : 10:00 ~ 19:00 ■ 작가만남 : 2015년 1월 31일(토) 14:00 ■ 장 소 : 3층 제1,2전시실 ■ 참여작가 : 김성원, 김호찬, 류 작, 신성민, 이충엽 ■ 주 최 : 봉산문화회관 ■ 문 의 : www.bongsanart.org 053-661-3521 트위터(@bongsanart), 페이스북(bongsanart)
▢ 워크숍 ■ 제목 : 김성원, 김호찬, 류 작, 신성민, 이충엽 5인과 대화 ■ 일시 : 2015년 1월 31일(토) 14:00~16:00 ■ 장소 : 3층 제1전시실
▢ 전시소개 봉산문화회관기획 2015특성화 전시 지원 프로그램 『META; 이름 없는 영역에서』展
봉산문화회관은 대구의 중심에 위치한 공공예술지원센터로서 대구지역 예술가의 특별한 시도와 활동을 지원하는 전시를 마련한다. 특화된 전시를 지원하려는 이 전시는 2014년에 이어 두 번째이다. 2014년 2월에는 ‘2013 몽골 노마딕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후기 전시를 지원하는 ‘be anda; 이름없는 땅으로’展을 마련했었다면, 이번에는 ‘META’라는 이름으로 2014년 8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한 5명의 젊은 작가를 지원한다. 그룹의 구성원 김성원, 김호찬, 류작, 신성민, 이충엽은 개별적으로 새로운 형상미술을 시도해오던 작가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형상미술에 대해 예술적 교감을 나누고, 서로에 대한 건강한 자극을 생산하기 위해 비교적 느슨한 협의체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을 초월한, ~의 이면에, ~의 본질적인’이라는 의미의 ‘META’적 지향을 선언하였으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자신들의 현재 상태에서 낯설고 모호한 주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접근하고 실험한다는 의미로 ‘이름 없는 영역에서’라는 전시의 성격을 설정하였다.
형이상학(meta-physics), 메타적 가치관(Meta-Frame), 메타적 소통(Meta-Communication), 은유(Metaphor)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전시 작품들은 회화를 통하여 작가 자신의 사유를 가시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또 ‘낯설게 하기’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을 통하여 결론이 없이 모호한 상태에 처한 관람자가 새로운 상황 판단을 해야 하는 설정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것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인 시인 로트레아몽(Lautréamont)의 유명한 시구절 ‘재봉틀과 박쥐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듯이 아름다운…’을 닮았으며, 일상적인 질서에 놓여있던 낯익은 물체를 본래의 상태에서 떼어내 뜻하지 않은 장소에 놓아 관람자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주려는 고전의 응용이다. 참여 작가들의 사유에 대해서는 이충엽이 지난 8월 나에게 보내준 글의 일부에서 다소 이해를 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바다, 깊은 것을 심연(深淵)이라 하지만 그것도 한자풀이로 따져보면 기껏해야 지구라는 별에 놓인 한낱 깊은 연못에 불과합니다. 바다가 제 아무리 깊어도 말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자가 세상을 다 그려낼 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과 끊임없이 겨루고 견주어가며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한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길 위의 여행에 광기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남철처럼 그것이 파르르 바늘 끝을 떨고 있는 동안엔 그것을 믿어도 괜찮습니다. 작가는 확신을 갖고 살아가기 보단 작가 자신조차 도마 위에 올려놓고 끊임없이 살펴보는 자이니까요. 그래서 작가는 행복할 때조차 후회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 삶과 예술에 대해 많은 생각과 많은 말들을 듣고, 많은 이야기를 하고, 많은 충고를 하고 듣고 살아왔지만 예술이라는 멀고 먼 항해 길에서 온 몸에 상처를 가지고 통증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견디어 낸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몸과 마음이 온통 멍투성이, 상처투성이라 할지라도 떠나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텨주는 거. 깊고 푸른 것이 어디 몸에 물든 멍뿐이겠습니까. 가끔 사람들은 내 손톱 끝에 박힌 가시 하나의 통증이 온 세상이 앓고 있는 통증보다 더 크게 느껴지고 더 현실감 있게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처의 기억, 고통의 상상력을 통해 내 일이 아닌 일에도 내 일처럼 아파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꿈의 세계에서 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꿈꾸지 못하는 자들의 현실론이야말로 상상력 부재의 밀폐된 공간에 스스로를 유폐한 사람들의 답답함을 의미할 뿐입니다. 손톱 끝에 박힌 가시 하나에서 온 몸의 통증과 불편을 체험하듯 이 사회의 작은 일부가 아플 때 예술가는 그것을 자신의 일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것을 엄살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외면하고 잊어버리려 하는 통증을 표현하는 작가들을 탓하기에 앞서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당신의 그 마비된 상상력을, 굳어버린 심장과 양심을 먼저 의심하시기 바랍니다.”
참여작가의 작품들은 META의 지향을 향한 진행형으로 설명할 수 있다. 김성원의 작업 ‘틀, 안전하게 갇히다’와 ‘누드’는 시각을 자극하는 에너지가 있다. 알루미늄 캔 속에서 양손으로 귀를 막고 웅크리는 알몸의 남성의 이미지는 틀에 대한 인간의 괴로움과 고통을 관람객에게 전달하기에 탁월하다. 그리고 동네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포장 생닭의 이미지에서도 비릿한 냄새와 식용에 맞게 가공되어진 고깃덩어리의 상품성이 시각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작가는 먼저 인간 사회 혹은 인간의 태생적 틀에서 감지되는 인간 스스로의 고통과 괴로움을 관객과 공감하려고 한다. 현실 사회의 부정적 측면과 비판의 여지들을 시각화하는 것은 발견에서 채집, 작업으로 이어지는 예술가의 당연한 몫이다. 하지만 작가는 틀 안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인간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김호찬의 회화에는 엉뚱한 구조와 공간이 뒤범벅되어있다. 바닥이 천장으로 천장이 벽으로 바뀌는 등 빌딩과 거리, 계단, 지붕, 창문이 엉켜 붙어있고, 구조물 사이에 크고 작은 사람들이 간간이 등장한다. 어떤 사람은 건물 크기보다 더 큰 얼굴로 등장하기도 한다. 자유로운 드로잉 형식의 이 회화 작업들은 미완의 형식으로 인해 현실감과는 거리가 멀고 대체로 작가의 상상에 기초한 이미지들이다. 작가의 관심은 ‘해체’이다. 그가 바라보는 현실 이면의 진정한 모습이 ‘해체’이며, 이는 만남이 단절되고 관계성이 상실된 공간과 사회를 설명한다. 아마도 작가의 회화 작업은 좀 더 나은 세상 완성을 말하고 싶은 역설적인 울림이 아닐까싶다.
류작은 인간 개인의 외로움에 주목한다. 한 인간을 둘러싼 사회는 어둡고 부정적이며,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고독해 보인다는 것이 작가의 작업 설계의 배경이다.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어두운 화면은 현대사회의 부정적 사태를 상징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이 사태 속에서 외로운 개인을 주목하는 데, 외로움을 초월한 숨은 에너지와 빛, 긍정의 언어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회화작업 ‘Someone A’에서 개인의 증명사진을 언급한다. 작가는 증명사진 하나로는 개인을 증명할 수 없으며, 다양하고 깊은 개인의 진정한 실재는 시각화하기가 어렵다는 메시지를 이어간다.
신성민의 작업 'As-I-see-it'은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주제를 다루고 있다. 현실과는 다른 이면의 사안에 대해 작가는 순수한 접근을 지속하며, ‘내가 보기에는~’의 시각 형식으로 서술하여 화면에 나열한다. 고흐가 그렸던 의자와 법정스님이 사용하던 의자, 성스러운 의자로 불리는 베드로의 의자 등 의자 이미지를 배치하여 구성한 작가의 회화작품에서는 앉기에 편할 것 같은 의자가 심리적으로 불편하고 불안함을 주는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의자의 주인이 내면적으로 겪었던 고통과 시각적으로 인식되는 의자 그 너머의 의미를 찾고자하는 작가는 다른 시공간의 장면들을 병치시켜 낯선 장면을 연출한다.
이충엽의 회화는 초현실주의의 정형처럼 보인다. 그는 재현 혹은 모방적인 예술과는 반대편에서 허구적인 상상을 기초로 자신의 사유를 시각화한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순수 상상이라고 설명한다. 작가의 기본적인 작업 설계는 익숙한 이미지를 제시하면서 내면의 심리와 인간의 사회 현상에 대해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의 출품작 ‘Chess’는 인간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면을 쓴 절대자들의 조정으로 움직여지고 있지 않을까하는 질문과 은유이다. 그리고 미지의 세계를 의미하는 바다 이미지와 원형창문을 화면에 설정하여 절대자의 힘이 인간의 시각을 한 방향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현실 이면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제안하는 이름 없는 영역의 낯설고 새로움을 우리 중 일부가 공감할 수만 있다면, 참여 작가를 비롯한 우리 모두는 굳어버린 심장과 마비된 상상력을 회복하며 조금 더 풍요로운 미래 세계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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