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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경상북도립교향악단 2010 신년음악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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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이충근 | 작성일 | 2010-01-07 | 조회수 | 5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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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향 전단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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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S CLASSIC MANAGEMENT E-mail : basslcg@hanmail.net 경상북도립교향악단 2010 신년음악회 1. 공 연 명: 경상북도립교향악단 2010 신년 음악회 2. 공연일시: 2010년 1월 28일(목) 오후 7시30분 3. 공연장소: 구미시 문화예술회관 4. 주 관: 경상북도립교향악단 5. 입 장 권: 전석초대 6. 공연문의: 053)324-7279 킴스클래식 매니지먼트 TEL.FAX 053)626-1116 대구시 남구 대명2동 11793-1번지 2층 (705-817) 프로그램 협연/ 바이올린 양성식 □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작품 제47번 시벨리우스 Concerto for Violin in D minor, Op.47 Jean Sibelius(1865~1957) Allegro moderato Adagio di molto Allegro, ma non tanto □ 교향곡 제1번 라단조 “거인” 말러 Symphony No.1 in D \"Titan\" Gustav Mahler(1860~1911) 지휘자 이현세 프로필 서정적이며 또한 극적인 표현을 아끼지 않는 지휘자로 인정받고 있는 이현세는 국내외에서 활발한 연주를 통해 그의 독특하고 진보적인 음악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바이올린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하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 클리블랜드 음악원에서 바이올린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막스 로스탈(스위스), 빅토르 리버만(룩셈부르크) 의 마스터 코스에서 수학하였으며, 미국의 오하이오, 미시간, 일리노이, 위스콘신 주 등지에서 많은 독주회를 가졌다. Audubon Chamber Ensemble, Sorie Duo 등과 미국 중서부를 중심으로 활발한 실내악 연주를 하였고, Ohio Chamber Orchestra, Sinfonia da Camera 등의 교향악단에서도 연주 활동을 하였다. 이스턴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서 바이올린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 양성과 다양한 연주활동을 하던 중 이현세는 보다 더 포괄적 음악표현인 지휘에 매력을 느껴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일리노이 대학원과 미시간 주립대 학원에서 Donald Schleicher 와 Leon Gregorian을 사사하고, Gustav Meier, Michael Tilson Thomas, Erwin Acel, Jorma Panula의 마스터 코스에서 수학하였으며, Vakhtang Jordania를 사사 하며 인정받는 지휘자로 성장하게 되었다. KBS교향악단, 서울시향, 코리안 심포니, 대구시향, 부산시향, 광주시향, 청주시향, 전주시향, 원주시향, 사라예보 필하모니, 러시아 훼더럴 오케스트라, 하르코프 필하모니, 소피아 필하모니, 마이낫 심포니 등을 객원 지휘하였으며,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미시간 그랜드 밸리 주립대학교 지휘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동대학교의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극장을 단기간에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끈임 없는 진지한 연구를 통해 참신하고 폭넓은 레퍼토리와 치밀한 앙상블을 바탕으로 항상 작곡자의 의도에 충실한 연주를 보여주고 있는 이현세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경북도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부임하여 도민의 정서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쉽고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 성 식 런던에서 열린 칼 플레쉬 국제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일찍이 국제 무대에서 활동을 시작한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은 로린 마젤의 지휘로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과, 메뉴힌의 지휘로 로얄 필하모닉 등과 협연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11세 때 첫 독주회를 가져 음악계의 많은 관심을 모았으며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13세의 어린 나이로 파리 고등음악원 에 최연소로 입학한지 3년 만에 정규 과정을 마치고 같은 해 에 동 음악원 의 석사과정에 수석 입학하였다. 그리고 영국 런던 길드홀 예술학교에 진학하여 Advanced Solo Studies Course 에서 Yfrah Neaman 교수를 사사하며 17세에 Paganini 국제 콩쿠르에서 3등을 비롯하여 롱-티보, 리피저, 인디애나폴리스 등 세계 굴지의 경연 대회에서 잇달아 입상하며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하였다. 런던 BBC 교향악단, 몬테-카를로 교향악단, 레닌그라드 쳄버, 스코틀랜드 국립 교향악단, 아일랜드 국립교향악단, 런던 Mozart Players, Galbenkian 교향악단, Stavanger 교향악단, Bratislava 교향악단, 바르샤바 쳄버, 모스코바 교향악단 (키타옌코 지휘), Gavle 교향악단 등 유럽 전역에 걸쳐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으며 런던의 위그모홀을 비롯한 암스테르담의 Concertgebowg홀, 모스크바의 차이코프스키 홀 등에서의 공연으로 그의 명성을 전 유럽에 떨쳤다. 소니 클래식을 통해 모스크바 교향악단과 Chistiyakov 의 지휘로 바이올린 협주곡의 최고봉인 브람스와 시벨리우스를 녹음하였으며 기타리스트 장승호와 함께한 파가니니 작품 음반 파리 롱-티보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역임하였으며 2010년에는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재확인하였다. 이 밖에도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국제 페스티벌에 초청 받아 활동 중이며 유로아시아 뮤직 페스티벌의 음악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2009년 대구 카톨릭 대학교의 교수로 국내활동을 시작한 그는 현재 SCP International의 아티스트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말러의 생애 말러는 유태인의 피를 갖고 있었지만 보헤미안 출신으로 독일-오스트리아 문화권에 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심히 불안정한 영혼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이러한 혼혈성은 오히려 순수 독일-오스트리아 작곡가들은 꿈도 꾸지 못할 다양성과 자유분방함이 나오게 된 것이다. 빈 궁정 오페라극장의 지휘자로 데뷔하여 빈 필하모닉 상임지휘자로의 놀라운 행보, 장출혈로 인한 죽음의 위기에서 반려자 알마와의 결혼 그러나 이어진 아이의 죽음 등 화려했지만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극복하는 생애를 살아왔다. 피안의 감동과 벅찬 환희, 사랑과 죽음, 빛과 어둠, 이 모든 것을 예술 혼으로 성화 시킨 그의 작품이 자아의 정체성 상실로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말러의 교향곡 말러는 오페라의 지휘자로 큰 명성을 얻고 있었으나 오페라는 초기에 한 곡을 썼을 뿐 본질적으로 교향곡과 서정적인 가곡의 작곡에 주력을 두었다. 말러는 극적인 면을 강조하기 보다 서정성을 흐르게 하는 것과 구성이 굳건한 음악을 작곡하는 편에 이끌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말러로서는 슈베르트와 유사하게 교향곡과 가곡은 분리 할 수 없는, 말하자면 같은 창작의 세계였던 것이다. 교향곡에 대해서 말한다면 말러의 것은 모두 가곡의 체험과 가곡적인 영감에서 발전해 온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말러는 교향곡 여러 작품에 성악을 사용하였는데 성악이 들어 있지 않은 곡에도 자작의 가곡과 연관을 짓게 하고, 민요풍이나 가곡풍의 선율을 우위에 두는 등 가곡적인 성격을 충분히 띠게 하였다. 즉, 말러는 음악적으로 슈베르트와 같은 가곡적 선율의 작곡가였다. 그러나 말러는 순수하게 오스트리아 적이며 비인적이라 말할 수 있으나 슈베르트와 달이 한층 전원적이며 보히미아적인 소박함을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그 리듬도 기본적으로는 보히미아의 민속적 소박함이 살려져 있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스메타나라든가 드보르작과 같은 작곡가들보다도 휠씬 세련되어 있고 근대 감각적이며 국제적인 색채가 짙은 것이다. 이 리듬감은 슬라브 계통의 작곡가에게 신선한 것이라고 하여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젊은 시절의 쇼스타코비치도 그의 영향을 받은 한 사람이다. 말러의 교향곡은 대편성의 장대한 관현악을 사용 하지만 결코 거칠게 흐르지 않고 모든 것을 완전하고 정교하게 다루었으며, 그 울림 또한 투명하고 대위법적이다. 화성은 바그너풍으로 정성껏 다루고 있으며, 대위법의 서법도 신선하고 치밀하다. 그리고 악곡 하나하나의 악장에도 심리적인 상징으로서 표제적인 것이나 설명적인 것을 붙이는 일이 적지 않은 것도 바그너파와의 긴밀한 결부를 생각게 한다. 교향곡 제1번 이 교향곡은 「거인」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그것은 작곡자 자신이 곡의 내용을 표제적으로 제시하려고 붙인 것인데, 실은 「거인」이라는 이름에서 일반적으로 느껴지는 인상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말러는 독일의 낭만파의 작가인 얀 파울의 같은 이름의 「거인」이라는 시를 생각하여 이러한 이름을 붙이게 되었는데 다시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 곡을 각기 두 개 악장씩 나누어 그 제1부에 「젊은이, 미덕, 결실, 고뇌 등의 나날에서」, 제2부에서는 「인간적인 희극」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정서의 관념을 명백히 하려 했다. 그래서 이 곡은 인생을 깨닫게 된 20대의 서정이 넘친 청년들의 일반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어 비좁은 세계 속에서 싸우고 혈기가 많은 마음으로 인생 속에서 돌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관현악 편성은 크지만 말러는 각 악기를 가곡풍의 선율로 교묘하게 노래 불리게 하는 점에서 성공하고 있다. 1888년 말러는 부다페스트 왕립 가극장의 지휘자로 2년간체재 했는데 그 사이에 교향곡 제1번이 완성되었다. 1889년 11월 20일 부다페스트 필하모니 교향악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 이후 최대의 교향곡 작곡가」가고 세실 그레이가 평한 것처럼 시벨리우스의 가장 뛰어난 작품은 교향곡이며 또한 민족 전승(民族 傳承)에 바탕을 둔 많은 교향시일 것이다. 독일 음악이나 보로딘, 차이코프스키의 영향에서 출발한 그는 고국 핀란드에 뿌리 내려 어떠한 악파로도 분류될 수 없는 독자적 개성적인 스타일을 완성했다. 이와 같이 교향적 서법에 가장 뛰어났던 그가 연주 기교의 과시라는 요소를 전통적으로 포함한 협주곡을 한 곡밖에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또 이 한 곡에 있어서도 종래의 협주곡에 비해서 휠씬 교향적인 색채가 진한 것도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젊은 날 바이올린 연주자 지망생이었던 그는 악기의 능력을 충분히 구사해서 화려한 연주 효과를 올렸다는 점에서도 결코 결함은 없는 곡이다. 교향시 「타피올라」나 「교향곡 제7번」과 비교해 볼 때 이 「바이올린 협주곡」은 시벨리우스의 대표작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교향곡 제4번」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경향은 아직 그 자태를 보이지는 않으나 선율의 특징과 전통의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강한 의지가 마치 시벨리우스 이 외의 어떤 독창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제1악장에서는 소나타 형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카덴짜를 중앙에 둔 독특한 구성법을 취하고, 내용적으로도 정서의 깊이나 교향적인 중량감에 있어서도 지극히 충실하고 있다. 그가 1악장에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다른 악장에 비해 그 규모가 휠씬 큰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예는 그가 전생애에 걸쳐 존경의 뜻을 품어 오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도 볼 수 있지만 연주 시간만 하더라도 제1악장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시벨리우스의 곡이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이 작품이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작품에 다음 가는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근래에 이르러 애호되고 있는 것은 이 곡 저 곳에 보이는 전조의 부자연스러움이나 독주부의 유형적 서법(類型的 書法)이라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실로 개성적인 표현이 논리적인 어법과 잘 조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교향곡 제2번」과 「교향곡 제3번」사이에 작곡된 이 곡이 후에 볼 수 있는 시벨리우스 독자의 어법을 아직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그 새로운 싹은 여러 군데 나타나고 있다. 「생성적」(生成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주제 구성의 수법은 제1악장의 제2 및 제3주제에서 인정할 수 있고 시벨리우스가 젊은 시절부터 즐겨 사용한 오르겔풍크트가(베이스의지속음)가 여기서느 자주 세분되는 것도 훗날의 발전을 암시하고 있다. 교향시 「핀란디아」(1889년 작)등으로 독자적인 지휘를 쌓아 올린 시벨리우스는 유럽 연주 여행을 하다 1902년부터 2년 간 고국의 수도 헬싱키에서 보냈다. 작곡자가 38세 때인 1903년 이 이 작곡되었다. 그러나 퇴고를 거듭하여 2년 후인 1905년 개작하여 오늘날의 형태로 되기에 이른다. 1903년의 초고는 다음해인 1904년 2월 헬싱키에서 노바첵의 바이올린 연주로 초연되었다. 1905년 개작된 결정고(決定稿)의 초연은 같은 해 10월 요아킴 4중주단의 한 사람이었던 카를 할릴(Karl halir 1859~1909)을 독주자로 하여 리햐르트 스트라우스의 지휘로 베를린에서 열렸다. 제1악장은 전곡 중에서도 백미(白眉)이며 그 형식은 지극히 독단적이면서도 논리적이다. 2악장은 낭만적인 악상을 가졌으며 지극히 자유로운 3부 형식을 취하고 있다. 3악장 정서적인 깊이와 중후한 교향적 서법을 갖는 제1악장에 비해 활기에 넘치는 명랑성과 화려한 비르투오소풍으로 일관되어 있다. 론도 형식을 취하며 2개의 주제를 2회병렬 시키는 방법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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